문화재 재활용/교육·복지와 접목한 문화재 재활용

버려진 문화 공간에서 재활용된 시민참여 기록보존 프로젝트

barengilnews 2025. 8. 4. 14:52

도시의 한복판에 오래된 건물이 서 있습니다.
이전에는 학교였고, 또 한때는 공연장이었으며, 이후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창문은 깨졌고, 벽면은 낙서와 이끼로 덮였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곳곳에서는 이러한 폐허 문화공간을 단순히 복원하거나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 기억을 기록하고, 역사를 보존하며, 공간의 의미를 되살리는 프로젝트
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의 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간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기록보존(아카이빙)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사람과 공간이 다시 연결되는 문화적 실천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폐허 문화공간에서 진행된 기록보존프로잭트

이번 글에서는 폐허가 된 문화공간에서 시민이 직접 참여해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전시까지 만든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그 기획 배경, 운영 방식,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활용 가능성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왜 ‘폐허 공간’이 기록보존 프로젝트의 거점이 되는가?

폐허가 된 공간은 일반적으로 ‘쓸모 없는 곳’으로 간주되지만,
그 장소는 한때 사람들이 모였던 일상과 감정, 기억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입니다.

- 폐허 공간이 갖는 기록적 가치

  • 시간이 정지된 장소: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해석·보존의 대상이 됨
  • 다양한 서사 구조 존재: 학교 → 회관 → 창고 등으로 변화된 이용 이력
  • 정서적 연결성: 지역 주민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일 가능성 높음
  • 문화적 참여 욕구 자극: 주민들이 가진 개인적 기억을 공공화하는 동기 유발

이러한 공간에서의 기록보존은
도시의 망각을 막고,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문화로 승화시키는 매우 의미 있는 활동입니다.

 

2. 실제 사례: 광주 양림동 '구 선교사 사택터 아카이빙 프로젝트'

광주 양림동은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한때 번화했던 거리 중심에 있던 ‘구 선교사 사택터’는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2022년, 광주문화재단과 시민기록네트워크, 지역 예술인들이 협력하여
‘시간의 집을 걷다’라는 이름의 시민참여형 기록보존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 프로젝트 구성

  1. 시민 기록 수집 캠페인
    • “당신의 양림동 기억을 들려주세요”
    • 옛 사진, 편지, 가게 전단지, 회고록 등을 시민에게 공모
    • 총 1,200여 건의 기록 수집
  2. 구술 인터뷰 진행
    • 1930~1980년대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어르신 30명 대상으로
    • 1:1 음성 녹음 + 사진 촬영 + 인터뷰 기록집 제작
  3. 시민 아카이빙 워크숍
    • 시민이 직접 기록물을 분류, 디지털 스캔, 태깅 작업 수행
    • 지역 청소년도 참여 → 지역사 학습 연계
  4. 공간 내 전시 구성
    • 폐허 공간의 일부를 안전 보강 후
    • 수집된 기록을 활용한 전시회 ‘기억의 방, 시간의 창’ 개최
    • 빈 벽면에는 시민이 직접 쓴 “나의 양림동 기억” 포스트잇 붙이기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자료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안에서 사람의 이야기와 도시의 기억을 동시에 복원하는 활동으로 평가받았습니다.

 

3. 시민참여형 기록보존 운영 방식

이러한 기록보존 프로젝트는 ‘기록 전문가 → 시민 참여자’ 구조가 아니라,
시민이 직접 주체가 되는 수평적 구조
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 운영 핵심 요소

  • 주체 확장: 기록가, 큐레이터, 청년 아카이버, 지역 어르신, 학생 등 다양한 참여층
  • 참여 단계화:
    ① 기록 제공자 →
    ② 기록 분류자 →
    ③ 기록 해설자 →
    ④ 전시 구성 참여자 →
    ⑤ 공유·해석 공동 작업자
  • 교육 연계: 기록학, 문화재 보존, 로컬 브랜딩 교육 병행
  • 디지털 전환: 수집된 자료는 웹 기반 디지털 아카이브로 전환
  • SNS 캠페인: ‘#나의동네기록’, ‘#기억의집’ 태그로 확산

이러한 방식은 시민이 수동적인 참여자가 아닌
기록의 창작자이자 큐레이터로 거듭나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4. 기대 효과와 확장 가능성

폐허 공간의 기록보존 프로젝트는
문화유산 보존, 주민 소통, 도시재생, 세대 간 연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합니다.

- 기대 효과

  • 지역 정체성 회복: 잊혀진 장소에 대한 재해석으로 지역의 역사성 회복
  • 세대 간 대화 촉진: 구술 기록을 통해 청년과 고령층 간의 소통 창구 형성
  • 문화예술 활성화: 기록물 기반의 창작 콘텐츠(전시, 영상, 공연 등) 제작 가능
  • 관광 콘텐츠로 확장: 폐공간 → 마을기록관 or 미니박물관 → 로컬투어 코스로 발전
  • 청년 활동 기회 확대: 지역 청년 아카이버, 인터뷰어, 디자이너 등 창직 모델 유도

- 확장 가능성

  • 비슷한 방식으로 폐교, 폐성당, 폐기차역, 폐시장 공간 등에 적용 가능
  • 수집된 기록은 지역학, 마을사, 인문학 교육 자료로 활용 가능
  • 지역 축제, 출판, 온라인 플랫폼 등으로 연계 확장 가능

기록은 과거의 보존이지만,
이 프로젝트는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살아 있는 문화적 실천으로 기능합니다.

 

남겨진 공간에는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떠난 공간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기억과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기억을 다시 꺼내고, 정리하고, 나누는 일이야말로
공간을 다시 숨 쉬게 만드는 첫 번째 실천입니다.

폐허가 된 문화 공간은 더 이상 ‘관리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플랫폼이자, 시민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공공 문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 공간을 기억하는 시민의 손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