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재활용

방치된 문화재 역사관, 지역 아카이브 센터로 재활용한 사례 분석

barengilnews 2025. 7. 24. 20:10

전국 각지에 조성된 ‘역사관’들은 한때 지역 자긍심을 상징하는 공공시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따라 전시 방식이 낡고, 관람객이 줄어들면서
많은 역사관들이 운영 중단 혹은 폐관 위기에 놓였습니다.
특히 소규모 지방 역사관들은 활용도 저하, 예산 부족, 인력 축소라는 삼중고 속에
방치된 채 마을의 흉물로 남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방치 공간을 단순히 철거하지 않고,
지역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브 센터로 리모델링하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지역 아카이브’란 단지 과거의 자료를 쌓아두는 곳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기억을 기록하고 연결하는 동적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주민의 참여와 콘텐츠의 다양성에 따라 지역 문화의 허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방치된 문화재 역사관, 아카이브로 재활용

이 글에서는 방치된 역사관을 지역 아카이브 센터로 재활용한 실제 사례들을 분석하고,
그 전환 과정과 효과,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참고할 수 있는 핵심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역사관은 왜 방치되었을까? – 운영의 한계와 구조적 문제

역사관이 방치되는 주된 이유는 단순히 ‘인기 없음’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운영 구조와 콘텐츠 방식의 고정화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관은 과거 단일 전시물 중심, 연간 콘텐츠 비순환, 안내 인력 부족 등으로
관람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지역 내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한 공간’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역사관은 종종 관공서 주도 하에 일방적으로 조성되어
지역 주민의 기억이나 참여 없이 기획된 결과
공감이나 애착이 부족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콘텐츠의 고정성과 이용자 경험의 부족이
결국 역사관을 방문하지 않는 공간, 관심에서 멀어진 공간으로 만들고,
그 끝은 방치나 폐관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지로 이어지게 됩니다.

 

전라북도 익산 – ‘금마역사관 → 지역 아카이브 센터’ 전환 사례

전북 익산 금마면에 위치한 ‘금마역사관’은
한때 마한시대 유물을 전시하던 공공 역사관이었으나,
관람객 감소와 전시 콘텐츠 노후화로 인해 수년간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2022년, 익산시는 이 공간을 단순 폐관하지 않고
‘익산 지역 생활 기록 보관소’(익산 아카이브 센터)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과거의 전시 유물 위주 콘텐츠를 버리고,
현대적 디지털 기록 + 주민 중심 자료 수집 시스템
을 도입한 점입니다.

센터 내부는 크게 네 가지 공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 디지털 스캔 존: 주민이 보관 중인 사진, 일기, 서류 등을 디지털화하여 저장
  • 스토리 라운지: 세대별 기록을 바탕으로 한 영상 제작·상영 공간
  • 마을 신문관: 금마 지역에서 실제 발간된 마을 소식지, 유인물, 선거 자료 등 보관
  • 공유 기록실: 학생, 마을 기자단, 작가 등이 사용할 수 있는 리서치 공간

이 아카이브 센터는 단순 저장 기능을 넘어서
기록 수집 → 콘텐츠 제작 → 전시 및 상영 → 교육 및 워크숍까지 연결되는
풀 사이클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개관 이후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학술기관의 협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카이브 센터로의 전환이 주는 실질적 효과

역사관을 아카이브 센터로 전환했을 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이용자의 변화와 콘텐츠의 확장성입니다.

▶ 이용자 변화:

기존 역사관의 주요 방문자는 학교 단체나 단발성 관람객이었지만,
아카이브 센터가 된 후에는 지역 주민, 학생, 연구자, 콘텐츠 제작자까지
지속적인 이용자 층이 확보되었습니다.

▶ 콘텐츠 변화:

고정된 유물 중심 전시에서 벗어나
시민 참여형 전시, 체험형 워크숍, 오픈 아카이브 전시회, 팟캐스트 공개방송
더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 지역 정체성 강화:

기록을 수집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사건, 인물, 변화된 생활상이 집대성되었고,
이는 지역 브랜드와 커뮤니티 정체성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결국 방치되던 역사관이
‘사람이 다시 모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이 전환이 갖는 가장 실질적인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기록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자산입니다

문화재와 공공 공간은 지키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 공간에 사람의 기억과 참여가 연결될 때,
비로소 그 공간은 다시 ‘살아 있는 장소’로 전환됩니다.

역사관을 아카이브 센터로 바꾸는 일은 단지 리모델링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의 구조를 바꾸고, 접근 방식을 바꾸며, 지역과 소통하는 방식을 재설계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전환은 전국 어디서든 가능하며,
특히 방치된 소규모 공공시설이 많은 지방도시나 농촌 지역일수록
가장 적은 예산으로 가장 강력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를 보는 창이 아니라,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거울입니다.
그리고 아카이브 센터는
그 거울을 주민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