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유적지는 오랫동안 ‘역사적 기념물’로서의 가치만 인정받으며 보존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성곽 유적은 그 위치나 구조적 특성 때문에 관광객 유입이 어려워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자체나 문화재청에서 보호는 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활용 가치 없이 흉물처럼 남아 있는 성곽 유적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유적지가 역사와 문화가 융합된 현대적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방치된 성곽 유적지를 야외 콘서트장으로 리모델링한 사례는
보존과 활용의 조화를 보여주는 매우 인상적인 시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성곽 유적지가 야외 공연과 대중문화 콘텐츠의 무대로 바뀐 사례,
그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의 변화, 그리고 앞으로 이런 활용이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방치된 성곽 유적지는 왜 활용되지 못했을까?
성곽 유적지는 대부분 고지대, 외곽 지역, 산악 지형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문화재 보호라는 법적 제한 때문에 구조를 변경하거나 상업적 행위를 하기 어렵다는 점도 활용의 걸림돌이 되어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성곽 유적은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 예천의 ○○산성, 충북 제천의 △△토성,
전남 해남의 □□읍성 등은 유적의 가치에 비해 관광 콘텐츠가 거의 없고,
관리도 최소한의 예산으로 이루어져 사실상 방치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적지들은 넓은 야외 공간과 탁 트인 시야,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지니고 있어
문화예술 활동의 무대로 재활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주 ‘무등산 자락의 옛 성터’, 음악과 사람을 불러모으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무등산 서쪽 성곽 유적지는 과거 군사 방어시설로 사용되었으나,
오랫동안 제대로 된 관리 없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위치는 좋지만, 등산객 외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고, 문화재로도 등록되지 않아 관심 밖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광주 지역의 민간 문화기획 단체가 이 공간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자연 속 힐링 콘서트’라는 콘셉트로 한 야외 음악회 기획안을 지자체에 제안하였습니다.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기존 구조물에는 손대지 않고 야외 평지 공간만 무대와 객석으로 구성한 소규모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대에는 유명 가수가 아닌, 지역 뮤지션, 전통 국악 팀, 퓨전 밴드 등이 섰으며,
객석은 돗자리, 나무 벤치, 바위 위에 앉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성곽에서 듣는 한여름 밤의 콘서트'라는 이미지로 지역 브랜드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재 훼손 없이 공연장으로 재활용하는 방법
성곽 유적지처럼 보존 가치가 높은 공간을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 훼손을 방지하는 설계 방식입니다.
광주 사례에서처럼 성공적으로 콘서트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① 비상설 구조물 설치
무대, 음향 장비, 객석 등은 이동식 또는 조립형으로 설계하여,
공연 후 완전히 철거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합니다.
지반에 구멍을 내거나 고정물 설치는 지양하고, 잔디 보호 매트와 이동식 데크를 활용하는 방식이 적합합니다.
② 저음향·자연친화적 기획
야외 공연이지만 고출력 음향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소규모 어쿠스틱 공연 중심으로 기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로 인해 주변 자연환경과 야생 동물 서식지를 보호할 수 있으며,
관람객에게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음악회’라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③ 관객 수 제한 및 예약제 운영
문화재 보호와 지역 주민의 생활권 보호를 위해
입장 인원수를 제한하고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또한 관람객에게는 쓰레기 비닐, 손전등, 매너 안내문 등을 함께 제공하여
공간 보존과 질서 유지에 협조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과거의 방어 공간이, 오늘의 문화 플랫폼이 되다
성곽 유적지는 원래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공간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소통과 예술, 감동이 오가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성곽 유적의 활용 사례가 아니라, 문화재 보존과 현대적 활용이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문화재는 지켜야 할 대상으로서의 시대를 넘어,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발길이 닿고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이라면
그곳은 다시 ‘살아 있는 문화재’가 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방치된 성곽 유적지들이
지역 예술인과 청년 기획자들의 손을 통해 자연과 역사,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길 기대합니다.
보존과 활용, 그 사이에 문화가 숨을 쉬는 길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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