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문화재 관광지, 진로체험 학습장으로 재활용된 이야기
한때 수많은 관광객이 찾았던 명소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결국 방치된 채 잡초와 먼지만이 자리를 채우는 풍경은
지방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이 ‘버려진 공간’이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교육의 현장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진로체험 학습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있습니다.
낡고 멈춘 공간이,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탐색하고,
직업의 세계를 몸으로 느끼는 장소로 재탄생하면서
관광지는 ‘소비의 공간’에서 ‘성장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방치된 관광지를 진로체험 학습장으로 탈바꿈시킨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그 기획 배경, 운영 방식, 참여자 반응, 그리고 교육적·사회적 효과를 단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왜 방치된 관광지가 진로체험장으로 변할 수 있었을까?
많은 지방 관광지는 유행의 변화, 접근성 문제, 콘텐츠 부족 등의 이유로
방문객이 급감하면서 사실상 유휴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런 공간들은 대부분
① 넓은 부지,
② 다양한 구조물,
③ 접근 가능한 입지
를 갖추고 있어, 교육 콘텐츠와 결합하면 다양한 실습과 체험이 가능한 현장형 학습장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 관광지를 진로체험장으로 바꾸는 장점
- 기존 인프라 활용: 주차장, 건물, 편의시설 등을 그대로 사용
- 몰입도 높은 현장 체험 가능: 기존 테마파크, 동물원, 수공예촌 등은 직업군과 연결이 쉬움
- 지역 산업과 연계 가능: 관광+직업을 연결하여 현실성 높은 직업 탐색 가능
- 학교-지자체-민간 협력 유도 용이: 방치된 공간을 교육과 연결하며 공공성 강화
이러한 특징 때문에 방치된 관광지는
단순히 재생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실험장이자 미래 인재 양성의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2. 실제 사례: 강원도 태백 ‘구 탄광 체험마을’의 진로학습장화
강원도 태백은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산업 구조 변화로 대부분의 탄광이 폐쇄되었고,
일부는 관광지로 재정비되었지만 결국 운영 중단 후 방치되었습니다.
그중 하나인 ‘황지 탄광 체험장’은 10년 넘게 폐쇄되어 있었고,
잡초가 무성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21년, 태백시는 이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청소년 진로특화 체험학습장’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 공간 구성
- 구 갱도 체험 코스: 광부 직업 체험, 가상 채굴 미션
- 석탄 운송 라인 → 창의공방: 미니 컨베이어, 기계 작동 체험
- 식당동 → ‘지역 직업 해설관’: 태백 내 주요 직종 소개 + 지역 직업인 영상관
- 야외 광장 → 환경·안전 직업 체험존: 안전교육사, 기상예보관, 드론조종사 등
- 프로그램 운영 방식
- 관내 초·중학교 대상 진로체험 연계 수업
- 1일 2회 타임제로 운영 (회당 90분~120분)
- 진로전문가 + 지역 강사 + 해설사 팀 구성
- 교사용 교육 가이드북 제공
- 진로체험 후 ‘직업일기’ 쓰기, 포토 다이어리 제작 프로그램 포함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폐공간 재생을 넘어
지역 산업사와 미래교육을 연결한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교육 효과 및 지역사회 반응
이 체험장은 개장 이후 1년 만에
지역 내외 학교와 기관 50여 곳, 3,000여 명의 청소년이 다녀갔으며
교육적·사회적 반응 모두에서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 교육 효과
- 학생들이 “직업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해본 경험”을 통해
자기 이해와 진로탐색 동기 강화 - 특히 평소 흥미가 낮던 학생들의 참여도와 표현력 향상
- 기존 진로교육과 비교해 몰입도, 만족도 2배 이상
- ‘태백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진로 수업’이라는 지역 특화 콘텐츠 확보
- 지역사회 변화
- 지역 어르신 15명, 은퇴 광산 인력 등 진로 멘토로 활동 시작
- 폐광촌 이미지 → ‘교육도시’ 이미지로 일부 전환
- 지역 소상공인, 식당 등 체험객 유입에 따른 간접적 경제 효과
-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교사에게도 지역에 대한 긍정 인식 확대
이처럼 한때 버려진 관광지는
아이들의 진로를 돕고, 지역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공간으로 변화했습니다.
4.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운영 전략
방치된 관광지를 진로교육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닌, 교육 콘텐츠 중심의 정교한 운영 전략이 필요합니다.
① 직업군 다양화
- 단일 직업군(관광, 광업)에서 시작하되
→ 디자인, 미디어, 환경, 공공 서비스 등 융합형 체험 콘텐츠로 확장 - AI, 탄소중립, 지역경제 등 미래 직업군 체험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② 학교-지자체 연계 체계 구축
- 지역 교육청과 정기 협의 → 방과후·자유학년제 프로그램과 연계
- 정규수업과도 연계 가능한 커리큘럼 구성 (교과 연계 진로체험)
③ 학생 주도 콘텐츠 구성
- 체험 후 자신의 직업 만들기 → 포스터 전시, 모형 제작 등
- ‘내가 만들고 싶은 태백 미래 관광지’ 상상 설계 활동 포함
④ 운영 인력 로컬화
- 은퇴 인력, 지역 전문가, 청년 해설가를 연계하여
지속 가능한 고용 모델과 교육 생태계 동시 확보
이런 전략은 공간 자체가 아닌 사람 중심의 콘텐츠 지속성을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버려진 공간에 진로를 심는다면, 아이들이 그 지역을 다시 기억합니다
방치된 관광지는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공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 안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올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진로체험은 단지 직업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상상해보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버려진 공간에서 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과거와 미래, 장소와 사람이 연결되는 의미 있는 경험입니다.
관광객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학생들이 찾아오고,
진로가 심어지고,
지역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그 공간은 더 이상 폐허가 아니라
교육이 자라는 삶의 공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