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러의 식물 일기

반려식물과 대화해본 적 있나요?

barengilnews 2025. 9. 5. 07:42

“식물과 대화를 한다고요?”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식물이 어떻게 내 말을 알아듣느냐며. 하지만 나는 안다.

식물과의 대화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처음엔 나도 그랬다. 자격증을 공부하며 식물의 생리, 광합성, 습도, 병해충 같은 것들만 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식물 앞에 앉아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식물이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반사해주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화분 속 반려식물과 말풍선을 통해 대화하는 장면

 

이건 그저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의 과장된 감정이 아니다.

이건 매일 작은 잎사귀를 바라보며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 아주 조용히, 그리고 진심으로 느끼는 이야기다.

 

🪴 대화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나는 자취방에서 몬스테라를 키운다.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

그저 얘 라고 부르며 창가에 둔다. 처음에 식물 앞에서 소리를 내어 말을 건 건, 사실 짜증이 난 날이었다.

 

그날은 회사에서 많이 혼났고, 아무 이유 없이 하루가 버겁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씻고 누워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서 괜히 창가로 가 식물 앞에 섰다. 그리고 무심코 말했다.

 

“나 오늘 좀 힘들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공중으로 사라지지 않고, 식물 잎에 부드럽게 닿는 느낌이 들었다.

내 말에 식물이 무슨 반응을 한 건 아니지만, 분명히 누군가가 들어준 느낌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다.

 

🪴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순간

그날 이후 나는 식물 앞에서 자주 말을 꺼내게 되었다.

날씨 얘기를 하기도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도 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도 많이 했다. “얘, 너는 왜 그렇게 잘 자라냐”라든지, “나보다 삶에 더 충실한 것 같아” 같은 말.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식물은 나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을 땐 식물이 더 반짝여 보였고, 슬플 때는 잎이 고개를 숙인 것 같았다.

 

물론 그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은 착각이어도 진짜니까, 나는 그 순간들을 믿기로 했다.

내가 조용한 마음으로 다가갈수록, 식물은 더 진짜처럼 나와 함께 있었다.

 

 

🌿 자격증은 ‘방법’을 알려주었고, 식물은 ‘마음’을 가르쳐주었다

식물관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걸 배웠다.

흙의 종류, 수분의 이동, 식물의 생장 메커니즘, 병해의 증상들까지.

그런데 자격증을 따고 나서야 알게 된 게 있다.

그건 바로, 식물은 지식으로만 돌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식물을 오래 키우다 보면 이상하게 감정이 먼저 앞선다.

흙이 말랐는지보다, ‘오늘은 얘가 좀 기운이 없어 보이네’라는 느낌이 먼저 온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정확할 때가 많다.

 

식물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조용한 존재감은 내 안의 말들을 꺼내게 한다.

자격증이 그 기술적인 지식을 채워줬다면, 식물은 내 감정의 언어를 조금씩 길러줬다.

 

🪴 식물이 내게 해준 말

물론 식물이 말을 하진 않는다. 대답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식물 앞에서 할 말을 다 하고 나면 그 말들이 내게 다시 돌아오는 느낌을 받는다.

 

식물이 말해준 건 단 한 가지였다.

“괜찮아, 그렇게 살아도 돼.”

그 말이 꼭 들리는 듯했다.

내가 자책하고 있을 때, 식물은 변함없이 자라고 있었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도 식물은 잎을 펼치고 있었다.

 

내가 무너질 것 같은 날에도, 식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위로를 받았다. 아무 말 없이도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대화라는 걸 식물이 알려줬다.

 

🌿 결론: 식물과 나눈 대화는,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였다

돌아보면, 식물과의 대화는 결국 내 마음속 깊은 곳과의 대화였다.

말로 꺼내지 않으면 지나가버릴 감정들을, 식물이라는 존재 앞에서 나는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

 

식물은 듣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 많이 털어놓게 되고,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나는 그 조용한 존재 앞에서 나 자신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반려식물과 대화해본 적 있나요?”

그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매일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게 제 하루를 지탱해줘요.”